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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휘 경(鏡)

시조 휘 경(鏡) 이래 고려말까지 11世 전후에 걸쳐 개성(開城)을 중심으로 경기 일원에 산거(散居)하였다. 조선초부터 종파(宗派)인 5세 휘 기정(基正)의 후손들은 중부 (中部),호남(湖南),서북(西北) 지역으로 세거지(世居地)를 개척하였고, 차파(次派)인 5세 휘 한정(漢正)의 후손들은 관향 지(貫鄕地)인 현풍(玄風)을 중심으로 영남일대에 세거지(世 居地)를 확대함으로써, 현풍 곽씨(玄風郭氏)를 크게 기호계 (畿湖系)와 영남계(嶺南系)로 나누게 되었다.
`병진보(丙辰譜)'에 나타난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구성을 보면 기호계 장파(畿湖系長派 39派),영남계 33파(嶺南系 33派)로 되어 있다. 그들의 세거지(世居地)를 살펴보자.

기호계(畿湖系)

5세 기정(基正)의 후손 중 12세 항(恒)의 자손들은 항(恒)의 아들 대에 봉화(奉化),괴산(槐山),합천(陜川)에 정착하여 살았으며 15세 의산(宜山)이 성종조 갑오(甲午)년에 황해도 봉산(鳳山)으로, 18세 금정(今貞)이 충남 아산(牙山)의 온양(溫陽)으로, 17세 점산(點山)이 경남 남해(南海)로, 15세 성문(成文)이 세종 25년에 평남 강서(江西)의 함종(咸從)으로 옮겨간 뒤에 이들 지역에도 자손들이 살게 되었다.
12세 종(悰)의 자손들은, 대체로 종(悰)의 손자(孫子)인 겸(謙)의 대를 전후하여 용인(龍仁)의 박곡(朴谷),음 성(陰城),청양(靑陽),서산(瑞山) 등지에 나뉘어 정착하였고, 24세 성기(成畿) 이래로 함양(咸陽)에, 21세 휘 남(希楠)이래로 평창(平昌)에, 19세 천애(天愛) 이래로 당진(唐津)에 일부가 가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밖에 원주(原州),수원(水原),김제(金堤),천안(天安),횡성(橫城) 등지에도 많이 살았던 것 같다. 12세 순(惇) 의 자손들은 15세 원부(元富) 이래로 황해도 수안(遂安)과 전북 김제(金堤)에, 성(惺)의 자손들은 성(惺)의 대 이래로 청주(淸州)를 비롯하여 청원군(淸原郡) 일대에, 정(禎)의 자손들은 당진(唐津),대구(大邱) 등지에 나뉘 어 살았으며, 그 중 일부는 13세 충(沖)이 황해도 서흥(瑞興)으로 옮겨간 뒤 그곳에 정착했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11세 유의(游義)의 자손들은 일부가 16세 맹원(孟元),수향(秀享) 이래로 보은(報恩)과 경기도 이천 (利川)에, 15세 치생(致生) 이래로 황해도 장연(長淵)에, 13세 기(祁) 이래로 정읍(井邑)에, 13세 도(都)의 자손들은 경기 포천(抱川)과 영암(靈巖)에 18세 흘(屹)의 자손들은 영양(英陽) 청송(靑?) 울진(蔚珍) 대구(大邱)에 18세 우(堣) 이래로 시흥(始興)에 옮겨가 세거(世居)했으며, 일부는 14세의 대에 득형(得亨)이 연산조에 임실(任實)의 주천(酒泉) 에 퇴거한 것을 비롯하여 파주(坡州),영암(靈岩),무안(務安) 등지에 터를 잡았던 것 같다.
20세 충양(忠陽)의 대 이후에 나주(羅州),영광(靈光),완주(完州),고창(高敞),영양(英陽),고흥(高興) 등지와 함흥(咸興),홍원(洪原),길주(吉州),괴산(槐山),울진(蔚珍)의 평해(平海),부산(釜山) 등지로 산거(散居)해 갔던 보인다.
11세 유례(游禮)의 자손들은 12세 사(師)가 단종 손위(遜位) 때에 벼슬을 버리고 아들 득창(得昌)과 함께 금 산(錦山)의 천황동(天皇洞)에 은거한 뒤에 충남 금산(錦山)일대에 세거의 터를 삼았고, 일부는 13세 득하(得賀) 이래로 상주(尙州),청주(淸州),보은(報恩) 등지에 가 정착했다고 믿어진다.
또한 11세 승산(承山)의 후손들은 경북 인동(仁同)에 정착하고, 12세 해(海)의 자손들은 해(海)가 여말(麗未)에 광주(光州) 산모동(山慕洞)에 은거한 이래로 그 후계(後系)가 지금의 광산(光山)에 자리잡은 것을 비롯하여, 1 3세 사녕(思寧) 이래로 전남 해남(海南)에, 15세 자정(滋貞) 이래로 진도(珍島)에, 17세 수종(守宗) 이래로 고흥(高興)의 흥양(興陽)에 나뉘어 살게 되었다.
그밖에 장성(長城),함평(咸平),남해(南海) 등지에도 일부가 살았던 것 같다.
7世 일신계(日申系)인 11세 여(麗)의 자손들은 대체로 14세 호(琥)의 대 이래로 지금의 평남 평원(平原)과 강원도 홍천(洪川),강화(江華),강릉(江陵),정선(旌善) 등지에 산거(散居)하였다.

영남계(嶺南系)

5세 한정(漢正)의 자손들 중에서 10세 윤명(允明)의 후계(後系)는 선대(先代)부터 세거해온 경북 달성(達城) 의 현풍(玄風)과 창원(昌原),고령(高靈),칠곡(漆谷) 등지에 많이 살았고, 윤명(允明)의 동생인 윤광(允光)의 후계(後系)는, 14세 수녕(遂寧),우(宇)의 대를 전후하여 경북 영천(永川),전북 완주(完州)에 정착하였고 그 중 일부가 대구(大邱),청도(淸道) 등지로 옮겨 갔던 것 같다.
14세 승양(承陽)의 자손들은 현풍(玄風),고령(高靈),창원(昌原)에 주로 세거하고 일부가 승양(承陽)의 증손 曾孫) 후인(厚仁)의 대부터 울진(蔚珍)에 자리 잡은 것을 비롯하여 19세 홍목(鴻睦) 이래로 울산(蔚山)에, 17世 율(趄) 이래로 고령(高靈)에 가 살았으며, 20세 몽해(夢海)의 대부터 5대에 걸쳐 합천(陜川),성주(星州) ,완도(莞島),밀양(密陽),함안(咸安)의 칠원(漆原),경산(慶山)의 자인(玆仁) 등지에 터를 굳히게 되었다고 믿어진다.
승양(承陽)의 동생 승화(承華)의 자손들은 현풍(玄風),의령(宜寧),창녕(昌寧)에 주로 세거하고 승화(承華)의 대 이래로 창녕(昌寧)에 세거하였으며, 19세 순(淳),동(潼)의 대를 전후하여 일부가 대구(大邱),의령(宜寧), 선산(善山),합천(陜川)의 삼가(三嘉)에, 다시 25세 철(●)의 대에 이르러 사천(泗川),진천(鎭川),상주(尙州), 임실(任實),거제(巨濟),진주(晋州),고성(固城),김해(金海),영천(永川) 등지에 산거(散居)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4세 승문(承文)의 자손들은 대구(大邱),청도(淸道),창녕(昌寧)에 많이 살았다.
1930년경 현풍 곽씨(玄風郭氏)는 충남 금산군(錦山郡) 남일면(南一面), 전남 진도군(珍島郡) 군내면(郡內面), 경북 달성군(達城郡) 현풍면(玄風面,유가면(瑜伽面),구지면(求智面), 경남 남해군(南海郡) 서면(西面),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초와면(楚臥面), 평남 용강군(龍岡郡) 다미면(多美面)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 대표적 집성촌의 하나로 경북 달성군(達城郡) 현풍면(玄風面) 대동리(大同里) (솔례(率禮)마을을 꼽는다.
포산곽씨세거지(苞山郭氏世居地) 솔례
솔례(率禮)에만 1백 2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으며 이웃의 현풍(玄風),구지(求智),논공(論工),고령(高靈)까지 합치면 1천여 가구에 달하는 현풍(玄風),포산 곽씨(苞山郭氏) 마을이다.
6.25 때 동네가 몽땅 불에 타 뿔뿔이 흩어졌던 자손들이 다시 모여 곽씨(郭氏) 동족부락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주요집성촌

경기 파주시 적성, 이천시 율현동 ,
경북 달성군 구지면, 현풍면, 유가면 일원 , 구미시(구 선산군) 장천면 상림리 , 상주군 중동면 회상리
경남 거제군 거제면 범동리 , 남해군 서 면 일 원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송월리 ,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 ,
전북 김제군 만경면 진봉면 ,
충남 금산군 남일면 일원 ,
평남 용강군 다미면 우안리, 평남 강서군 수산면 운남리 , 황해 봉산군 초와면 일원리 ,